단문

[베이즈X치루트] 2.14

쩜사 2017. 2. 14. 20:07

 

 가끔씩 먹는 것은 마다하지 않았지만, 치루트는 단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어린 마음에 단 맛을 갈망한 적이 있었지만 사치라고 생각해 왔기에 입에 대지 않았고, 더 이상 사치라고 부르지 않아도 괜찮았을 순간이 되었을 때는 익숙하지 않은 맛이라 권유의 손길을 밀어냈을 뿐이었다.

 

치루트는 차가운 흙 담에 기대어 앉아서 슬며시 눈꺼풀을 닫고 어렸던 시절을 떠올렸다. 아직 그들이 길거리를 떠돌았을 때에는 배가 고프면 서슴지 않고 말 그대로 아무 맛이 없는풀 따위를 뜯어 입으로 가져가고는 했는데, 치루트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쓴 맛의 남루한 삶에 적응해 살아온 반면 베이즈는 정 반대였다.

 

얻지 못한 것에 왜 저리도 집착이 심한지.’ 치루트는 문득 든 생각을 빠르게 흘려보냈다.

 

치루트에게 힘들었던 시간들이 수련의 일환으로 다가온다고 하면, 베이즈에게는 다시는 마주보고 싶지 않아서 밀어내거나 피해 다녀야 하는 끔찍한 파도쯤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가 대개 부드럽게티격태격 하는 것처럼 보여도 본질만은 연하도록유지되는 것도 그 파도가 일으킨 풍화침식 때문이었다는 것을 베이즈는 알 리가 없었다.

 

도둑질을 하면 안 된다고 일러주었더니 다음날에는 블라스터로 상인들을 협박해 과일이나 초콜릿 따위를 강탈해왔던 단순무식한 아이 때문에 깜짝 놀라서 졸도할 뻔 한 것이 생각나 그는 소리 없이 웃었다. 훔쳐놓고서는 내가 멀쩡히 살아서 돌아온 것도 포스의 뜻이야라며 뻔뻔한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베이즈는 그대로 자랐다.

 

 그들의 정신의 기둥으로부터 내려와서 말단의 사소한 것까지도 반대되는 것을 보면, 하나의 존재로 생겨나서 갈라져 딱 맞는 조각을 닮은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왔을지도 모르는 것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언제나 치루트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서로 차이점이 많으면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답할 것이다. 자석의 다른 양 극이 서로를 끌어당기듯이 그들도 그렇다고.

 

 치루트는 제의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손에 잡힌 담배 곽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그는 애연가였지만 매캐하고 쓴 연기를 혐오하는 베이즈보다 담배를 더 사랑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베이즈의 앞에서 흡연하는 것은 일찌감치 그만두었다. 치루트는 일어서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들을 가만히 들었다. 젊은이들이 술값을 걸고 내기 경주라도 하는 건지, 달리는 소리가 땅을 울렸다. 치루트는 짓궂게 굴어볼까 싶어 유독 바쁜 듯이 발자국을 찍는 한 사람을 붙잡았다.

 

신사 분, 바빠 보이지만 불 좀 빌려주겠소?”

 

아니.”

 

그 자가 다가와 거칠게 치루트의 손에서 담배를 뺏었을 때야 그는 제 앞의 사람이 베이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상황을 무마하려는 듯 어색하게 웃었지만 신발 밑창이 흙바닥에 부득부득 비벼지는 소리는 자비는 있을 수 없음을 암시해주었다. 이미 다 쭈그러지고 흙 범벅이 되었겠군, 치루트가 아쉬운 듯 중얼거리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베이즈는 급하게 치루트를 들쳐 업고 뛰었다.

 

베이즈?”

 

옷이 덮인 넓은 등판이 그대로 치루트를 받쳐주었다. ‘오늘은 그 괴상한 헤비 블라스터 밥통은 두고 온 모양인데.’ 그는 생각했다. 블라스터의 동력원에게 자리를 뺏기고 불편하게 어께에 메여서 버둥거리던 몇 년간을 떠올리다 그에게서 갑자기 웃음이 크게 터져 나왔다. 베이즈는 곁눈질로 치루트를 살피고는 피식 웃었다.

 

일부러 제국군 놈들이 밀어주는 상인한테서 털어왔는데,” 베이즈는 불편하다 느꼈는지 치루트를 고쳐 업고 말을 이었다. “오늘은 운이 좀 안 좋았군.”

 

강도질은 그만두래도.” 치루트는 베이즈의 목을 감싼 팔을 장난스럽게 조였다.

 

그래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기나.”

 

블라스터를 쏘아대는 소리가 치루트의 귓전을 세게 치고 지나가자 그는 베이즈의 귓가에 여유롭게 속삭였다.

베이즈, 이만 내려줘.”

 

, 담배 피려다가 지팡이 두고 온 것도 잊어버렸나보군.”

그건 밑도 끝도 없이 날 업고 온 네 책임, 됐어. 잠잠해지면 꼭 다시 찾으러 가세.”

 

 베이즈는 헤비 블라스터 대신 가지고 나왔던 보통 크기의 블라스터크기는 보통이라지만 역시 불법개조 된 것이었다로 그들의 뒤를 쫓아오던 몇 스톰트루퍼를 쏘아 눕히고는 외지고 좁은 골목길로 숨어들었다. 매섭게 땅을 울리며 뛰는 한 무리의 발자국 소리가 지나가고, 베이즈는 치루트의 발이 접질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치루트를 내려놓고 한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숨을 돌리고 있을 때 낙오된 한 스톰트루퍼가 그들을 발견했다.

 

그것이 총을 제대로 겨누기도 전에 치루트가 빠르게 다가가 가슴께를 세게 올려 차고, 투구가 다 가리지 못한 틈들을 노려 단단한 손으로 찌르자 흰 갑주 속에 숨은 이가 컥 거리는 소리를 내며 휘청거렸다. 중심을 잃은 몸을 무너뜨리는 일은 치루트에게 쉽기만 했다. 옹골찬 발로 적의 한 쪽 발 복사뼈를 걷어차며 힘을 실어 주먹다짐을 퍼붓자, 둔탁한 소리를 내며 스톰트루퍼가 쓰러졌다.

 

뒤에서 총을 겨누던 베이즈는 무안하게 손을 내렸다.

 

혼자서만 멋진 전투를 독차지하면 쓰나.”

치루트는 이를 다 내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자신에게만 보이는 세상 속에서 내가 어떻게 웃고 있는지 보고 있겠지.’

베이즈는 치루트를 팔로 감싸 품에 당기며 미소지었다.

 


그나저나, 오늘이 어떤 날일까.”

 

안타깝게도, 장님은 달력을 못 보는데.”

장난스러운 농담이 대답으로 돌아오자 베이즈는 앓는 소리를 내며 미간을 짚었다.

 

“214. 오늘은 초콜릿을 주고받는 날이라고. 어느 은하에서 언제 들어온 풍습인지는 모르겠지만.”

 

발렌타인 데이는 나도 알지. 그래서, 상인을 협박하려고 블라스터를 꺼냈다가 스톰트루퍼한테 쫓긴 게.”

치루트는 손으로 베이즈의 엉킨 머리를 대충 빗어주고, 그의 거친 피부를 손 끝으로 느끼며 웃음 지었다. 그는 베이즈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고 문질렀다.

 

나의 베이즈는 아직도 자란 부분이 하나도 없는 소년이다.’ 치루트는 그의 얼굴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초콜릿 때문이지.”

 

돈을 주고 사, 이친구야.”

 

치루트는 장난스럽게 베이즈의 뺨을 잡아당겼다. 불만스러운 소리와 함께 부스럭대는 소리가 그에게 들려오고, 달콤한 향이 나는 구체가 그의 입술에 문질러졌다. 익숙치 않은 맛이 어쩐 일인지 그의 침샘을 자극했다. 내가 단 음식을 다 맛있게 먹어보는군, 오래 살다 볼 일이야, 치루트는 천천히 베이즈의 얼굴을 쓸어내리며 베이즈의 가슴께에 손을 얹었다.

 

해피 발렌타인.”

한 손은 그의 입술에 초콜릿을 문지르고, 한 손은 그의 턱을 잡아 입을 천천히 벌리며 그의 눈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차인 베이즈는 기절했던 스톰트루퍼가 움찔거리는 것을 알아채고, 치루트의 입에 초콜릿을 굴려 넣은 뒤에 저 망할 것을 쏴야겠군, 하며 생각하던 차였다. 멱살이 당겨지며 진하고 달콤한 맛이 나는 입술이 제 입술에 맞춰졌을 때. 늦었지만 베이즈는 블라스터를 꺼내 스톰트루퍼를 쐈다.

 

갑작스러운 총성에 치루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둥그렇게 떴다.

베이즈, 베이즈?”


내가 너랑 나 말고 사람 하나라도 더 있을 땐 키스하지 말랬을텐데.”치루트가 붉게 번져서 뜨거운 제 얼굴을 보고 있을 것만 같아 베이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 이런. 안 죽었어?”

 

안 죽었었지. 포스가 안 알려주더냐?”

 

그럼 이제 없으니 더한 것도 하려고?”

 

베이즈는 잡아먹을 듯 거칠게 치루트의 어께를 잡고 제 고개를 살짝 기울여 입을 맞춘 채로 그를 벽에 밀어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