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물/[이름]

[베이즈X치루트]이름(1)

쩜사 2017. 2. 18. 01:23



베이루트 현대 AU


W. by gulmang


이 소재로 글을 쓰게 허락해주신 분께 굉장히 굉장하게 무지무지 감사드립니다 구십도인사 삼백번 절 삼백번 헹가래 삼백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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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게 길을 가던 이가 막대를 그러쥔 손을 치고 지나갔는지, 손을 떠난 것이 바닥에 땡강, 하는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떨어진 것을 그가 몸을 직접 숙여 줍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을 난처해하고는 했기에 그 반복을 막기 위해서 그가 마련한 방법은 맹인안내견을 들여오는 것이었다. 살갑고 순수한 생명은 결코 그를 동정하거나 조롱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을, 보이지 않았지만 믿었기에 치루트 임웨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는 발걸음을 멈춘 채 그의 기준으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길거리를 바라보며 제 옆의 견공에게 말했다.

베이즈. 화이트케인 좀 주워줘.”

 

이 때,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에 베이즈 맬버스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알지도 못하는 행인이 저를 바라보며 앞에 떨어진 것을 주워 달라 했으니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베이즈는 이내 그것을 무시할 수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흐리게 보이는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있었기 때문이다.

 

막대로부터 자유로웠던 왼손에 감아쥔 줄에 흔들리며 당기는 느낌이 없자,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재촉하듯 말했다.

어서, 베이즈. 시간에 맞춰서 상담사분께 가야 하니까.”

 

베이즈는 순간들이 지날수록 더 쌓여가는 의문을 뒤로 밀어둔 채 천천히 치루트를 향해 다가갔다. 눈동자, 바닥에 떨어진 막대, 맹인안내견으로 훈련된다고 익히 알려진 견종 골든 리트리버. 더 뜯어보지 않아도 자신을 부른 이의 눈이 멀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쇠가 보도블록에 마찰을 일으키며 나는 작은 소리가 치루트에게 화이트 케인이 옮겨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칭찬하는 것을 잊지 않아야겠다며 생각하고는, 그는 손을 허리보다 조금 더 아래로 향하도록 뻗었다. 난데없이 사람의 손이 그의 팔을 잡아 더 높게 올리고, 차가운 감촉의 막대를 그의 손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밀어 그것을 잡도록 하자 그의 미간은 구겨졌다. 눈앞인데도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식은땀이 그의 등줄기를 세게 긁으며 내려갔다. 용납할 수 없는 동정의 일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치가 떨린 그는 그도 모르게 손을 크게 움찔거렸다. 뒤섞여서 꿈틀거리는 온갖 끔찍함이 그의 생각의 회로를 막아버리자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막대를 다시 땅에 떨어뜨렸다.

 

누구세요.”

 

베이즈요.”

 

?”

 

베이즈라고요. 댁이 이름 불렀잖아요.”

 

치루트는 크게 숨을 들이키고는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에요, 당신. 장난치지 마세요.”

 

베이즈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에게 적개심이 티끌만큼이라도 없을 때, 눈앞의 상대가 화나 보인다면 굳이 그 감정을 더 돋울 말을 하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 그가 받아온 교육이었다. 제 앞의 남자가 머릿속에서 어떤 오해를 혼자 만들어 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받은 상처가 있으니 저렇게 행동하는 것이려니 하고 그는 가만히 서있었다.



그러다 지나가던 사람 몇은 싸움 소리에 멈추어 서서 베이즈를 둘러싸고 경멸하는 시선을 보냈다. 그는 곤란한 상황의 우리에 가두어져 도망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눈 수십 쌍이 그를 노려보고, 치루트를 보며 혀를 찼다.

 

이봐요. 아무리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사람과 개는 구별해요. 도대체, 나 같은 사람들을 어떻게어떻게 보기에 그렇게 구는 겁니까? 이젠 아무 대답도 없이 도망간 모양이군요?”

 

치루트는 당장이라도 제 목을 찢고 나와 두서없이 날뛸 것만 같은 말들을 한숨과 함께 띄엄띄엄 내뱉었다. 도대체 제 앞의 남자는 왜 다시 그에게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도록 만들어야만 했는지 묻는 소리가 그의 두개골에 부딪히고, 또 반대편에 부딪혀 끊임없이 울렸다. 그에게는 더 이상 무언가를 판단할 여유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바로 몸을 낮추어 바닥을 짚었다. 더듬거리던 손 위를 날카로운 구두굽이 짓누르고, 짧은 사과만을 남긴 후 땅을 울리며 멀리로 사라지자 그는 주저앉아 울고 싶어졌다. 화이트케인의 감촉이 손 끝에 닿자마자 서둘러 당겨 잡고, 그는 몸을 일으켰다.

 

저기.”

 

이대로는 안 된다 싶었던 베이즈는 한 번도 어기지 않았던 가르침을 깨 보려 시도했다. 모든 것이 오해라고 설명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자신의 이름이 베이즈 맬버스이며, 자신을 부르는 줄 알고 도우려 했던 것이라는 사실 외에도 치루트에게 해야 할 말이 많았다. 그의 어께에 손을 얹어 멈춰 세우자 냉담한 대답과 함께 그는 걸음을 재촉했다.

 

듣고 싶지 않네요, 갈 길 가시길 바랍니다.”

 

몇 번의 공방전이 둘의 말 사이에서 오갔다. 치루트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로, 걸음을 더 옮길 때 마다 점점 세게 바닥을 두드려가며 걸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고무로 씌워진 막대의 끝이 거친 땅에 쓸려 닳아갔다. 언제나 그의 옆을 지키는 것이 의무인 골든 리트리버 베이즈는 그가 분노에 목줄의 끈을 놓아버렸을 때에도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몇 십분 동안 숨을 몰아쉬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저기요, 다 오해입니다. 일단 좀 멈춰서 들어요, 전 장난치려고 한 게.”

 

더 이상 따라오면 경찰을 부를 거야, 당신.”

 

그는 뒤돌아서서 화이트케인을 꽉 쥐고 날카롭고 맹렬한 움직임으로 휘둘렀다. 칼을 부리듯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에 베이즈는 놀라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