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물/*재정비 중*

[베이즈X치루트] timidness(8)

쩜사 2017. 2. 28. 00:42

베이루트 현대 AU [Timidness]
W.by gulmang 







  무거운 공기가 베이즈의 부르튼 입술 위를 문지르자 그는 실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앞에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문 하나라서, 자신이 어떻게 하다가 잠들었는지 짐작했다. 마룻바닥이 몸에 닿아있었던 터라 그의 살가죽은 서늘하고 눅눅했다. 비가 온다, 생각하고는 그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서 몸을 일으켰다. 터진 상처들이 쓰린 탓에 욕지거리가 잇새를 비집고 나왔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고리를 돌려봤지만 문은 여전히 잠겨있었다. 화풀이를 하듯이 한 번 걷어차고는, 쾅쾅대었지만 그런다고 문을 열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덧대어져 못 박힌 나무판자가 창문과 함께 바람에 덜컹거렸다. 그는 무턱대고 판자를 잡고 잡아당겨 봤지만 판자를 떼어내기는커녕 손의 힘이 한 순간에 풀려 뒤로 나자빠졌다. 힘을 주느라 말아 물었던 아랫입술이 터져 시작된 빨간 길이 턱에서 끊겼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던 그는 발을 구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빗방울이 창문을 툭툭 두드리는 소리가 어서 나오지 않으면 그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 말하며 그의 조바심을 긁어 올렸다.

 

 

그래,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베이즈는 판자를 뜯어낼 만한 물건을 찾기 위해 양 옆을 두리번거렸다. 그 사람은 하다하다 별 걸 다해, 아주 감옥을 만들어 놨군, 그는 이를 꽉 맞물고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두께가 대개 보통의 책들이 그런 것 보다 두세 배는 더 두꺼운 책이었고, 다가가서 들어 올리려 해보니 두꺼운 만큼 무겁기도 했다. 지금은 확신보다는 가능성을 더 믿을 때지, 그는 생각하고는 있는 힘껏 책을 휘둘러 창문을 쳤다.

 

크게 덜컹이는 소리가 났을 뿐 별 다른 변화는 없었다. 그는 책을 내팽겨 치고는 주저앉았다. 눈물이 울컥 쏟아져 그의 뺨을 타고 달렸다. 소년이 무슨 힘이 있어서 창문을 깨뜨리겠는가. 그는 비탄했다.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죄책감 없이 사그라뜨리는 그 자의 손으로 그의 친구는 망가질 것이 분명했다. 베이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에게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그랬듯이.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아도 문간에 서있을 자는 계모뿐일 것이라 짐작한 베이즈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애를 해치고 내 면전에 조롱을 쏟아 부으려 다시 찾아온 것뿐이겠지.’ 베이즈는 눈을 감았다. 그녀의 손에 연결된 재산들로 조종할 수 있는 꼭두각시들은 헬 수 없을 만큼 많았다

 

담의 개구멍으로 우연히 마주친 아이도, 담에 걸쳐 높게 뻗은 나무에 올랐다 그를 발견했던 아이도, 세 살 위였던 그의 가난한 가정교사였던 아이도, 그리고 그가 만났던 다른 모든 아이들도, 그는 그에게서 도망친 줄로 착각했었다.

 

그의 나이라면 또래 친구를 원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의 계모는 그것을 반항이라 불렀다. 반항할 때 마다 하나씩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을 외면하며 누군가와 가까워지고픈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창문 덜컹거린 건 내가 한 게 아니라, 바람이 치고 간 것뿐이야.”


 

피가 배어나와 불그스름하게 물든 셔츠가 덮인, 소년의 아직 좁은 등은 바라보고 있는 이의 마음을 잡아 틀었다.

 

도련님, 접니다.”


앞머리를 깔끔하게 넘기고, 완전한 검정색의 연미복을 갖추어 입은 남자가 베이즈의 몸을 닦아줄 심산이었는지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대야와 수건 따위를 가지고 방에 걸어 들어왔다. 그는 웅크린 베이즈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가 가지고 온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베이즈가 고개를 살짝 틀어 그와 눈을 맞추자, 집사는 조심스럽게 그의 등을 덮은 얇은 천을 벗겨냈다. 거칠하고 축축한 감각이 덜 아문 상처 위를 쓸고 지나가는 것이 따가워 그는 바르작거렸다.

 

집사는 그에게 참으라고 이르고 싶었지만 고작 어린아이일 뿐인 그가 몸과 마음에 남은 모든 상처를 견뎌내는 것은 버거울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지켜봐 온대로.

 

도련님.”

 

 

데려다 드릴까요?”

 

베이즈는 말 할 기력도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집사는 베이즈를 들쳐 업었다. 베이즈는 그의 목을 껴안고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속눈썹에 빗방울이 떨어져 흐려진 시야 안으로 그가 정식적으로성당에 방문할 때 사용하는 차가 들어왔다. 우아한 검은 색에, 지붕이 없는 차였다. 비가 오는 날에는 다른 차를 사용했지만, 어째선지 그 차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됐던, 빨리만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안도감에 그의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차의 문을 열고, 집사는 부드러운 몸짓으로 그를 좌석에 앉혔다.

 

맑은 날에 지붕이 없는 차에 앉아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바퀴가 한 번 굴러갈 때마다 다르게 그의 살가죽에 내리쬐는 볕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게 응어리진 불안들이 잠깐이나마 풀리는 것 같았지만, 그와 정 반대인 지금의 상황에서는 몸 위에 바늘 더미가 내리꽂히듯이 내려오는 차가운 물방울이 그를 더 울적하게 만들었다.

 

여름이었다. 소낙비가 거세지고 있었다. 흠뻑 젖을 것이 분명했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집사는 차의 시동을 걸고는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십시오.”

 

 

비가 쏟아져 내리는 거친 흙길에서 모는 차는 심하게 덜컹거렸다. 겨우 피가 멈추었다 부딪혀 다시 터져버린 살가죽 틈을 굵은 빗방울이 찔러댔다. 베이즈는 눈을 감았다. 이마에 떨어졌다가 흘러내려 눈꺼풀을 쓸고 지나가는 비의 감각은 다른 빗방울이 떨어짐에 따라 묻혀버렸다. 정신을 잃지는 않았는지 걱정되었는지, 집사는 언제나 그랬듯 도련님이라는 호칭으로 그를 불러 눈을 뜨였다. 베이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풀린 사지가 길의 굴곡에 따라 흔들렸다.

 

 

집사는 그가 모든 것을 지켜봐 왔다고 이야기 했다. 그의 처지가 처참해 언제나 돕고 싶었지만 죽음을 감수할 만큼의 용기는 자신에게 없었던 모양이라 했다. 자신의 이기적임을 잘 안다며, 자신을 원망해도 좋다 말했지만 베이즈는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넘기며 이어지는 말을 받았다.

 

집사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그가 잃어버린 모든 자유에 대한 애도를 표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의 계모와 친부 사이에는 그가 친모와 사별하기 전부터 이미 아이가 있었다. 친부 또한 그다지 그를 애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베이즈를, 친모가 친부에게 묶여있도록 하는 족쇄쯤으로 취급했다. 그가 갇혀 살아간 이후부터 그의 편을 들어주는 상냥한 아버지의 역을 맡은 것일 뿐이며, 모든 일은 친부와 계모가 함께 꾸며내었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나서 집사는 다음 말을 입 밖으로 내기를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니 한 방울 쯤은 울어도 괜찮을 법했지만 베이즈의 속눈썹을 붙잡고 매달린 빗방울은 굴러 떨어지지 않았다. 몸은 젖지 않은 곳이 하나 없었지만,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무미건조했다.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자 앞만을 바라보며 차를 몰던 집사의 눈동자가 그를 향했다.

 

믿을 게 어디 있겠어요. 난 애초에 그 양반들 둘 다 별로였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좋아요.”

 

그렇습니까.”

 

그리고 이 점은 감수해요. 난 지금 당신도 못 믿어요. 모든 것을 간섭 받으면서 사는 동안 깨달은 점이 뭔지 알아요? 최악의 상황부터 생각해둬야 한다는 거요. 예를 들면, 이렇게 비 오는 날에 지붕이 없는 차를 타고 성당으로 데려다 주는 척 하다가 당신 안경알에 비가 떨어져서 앞이 안 보인답시고 사고를 내서 동반자살 한다던지.”

 

비아냥대는 어조에도 집사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좋아요, 진짜로 날 도우려고 한다면 물어볼게 있어요.”

 

입을 벌릴 때마다 놓치지 않고 달려 들어와 혀를 치는 빗방울들이 거슬렸는지, 베이즈는 힘겹게 무거운 손을 들어 입술 앞을 가렸다. 빗방울의 크기가 갈수록 불어났다. 그는 눈을 찡그린 채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본 쪽에는 구름이 깔려있지 않았다. 비와 볕의 경계선이 확연했다. 그들이 소나기의 절정을 지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말씀하세요.”

 

그는 가늘게 뜬 눈 사이로 지친 눈동자를 굴렸다.

저 사람들 왜 나를 가뒀던 거 에요?”

 

집사는 한 손 만을 운전대에 올려두고 자유로운 한 손으로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빗물을 닦아냈다. 그의 머뭇거림에 베이즈는 떠올렸다. 그에게 다가왔던 모든 어린 아이들의 것이 그랬듯, 집사의 말에는 타오르는 심지가 곧게 박혀있었고, 그것은 그의 속을 투명하게 비추어 보여줬다. 집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가 생각하는 진심의 기준에 달했다.

 

주인님께서는 도련님을 노년의 남자 갑부와 혼인시키려 하셨습니다. 바깥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채로, 순수하게 자란 청년만을 데려가는 대신 재산만은 넉넉히 남기겠다는 조건에 도련님을 부합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악한 짓을 저지르신 겁니다. 인간 같지도 않은 짓을 저지르고는 자신들의딸아이에게는 모든 사랑을 퍼붓는다니요.”

 

원래

 

 

원래 그런 사람들이겠죠.”

 

한동안 침묵이 돌았다.

 

여름의 구름은 빨랐다. 그들은 빽빽이 들어찬 구름 아래를 지나, 그것들이 흩어져 드문드문 자리 잡은 하늘을 위에 두게 되었다. 눈에 익은 성당의 머리 꼭대기가 그의 눈에 들어오자 아직 완전히 놓아버릴 수 없는 불안함을 죄어서 잡은 채 그는 젖은 얼굴을 두 손으로 쓸어내렸다. 모든 응어리를 쏟아내고 확 맑게 갠 하늘이 부러웠는지, 그의 눈물샘이 툭 터졌다. 떨어지는 것을 다시 주워 넣기에는 그의 머릿속이 너무 꽉 차있었다. 젖은 소매로 눈물을 닦자 축축한 것이 얼굴에 더욱 넓게 번졌다. 집사는 그런 그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차에서 내리면 몇 십, 많게 짐작한다고 해도 백 몇 발자국 안에 성당으로 갈 수 있을 정도의 거리였다. 집사는 갑자기 차를 멈추었다. 힘이 없고 멍든 몸이 앞으로 튕겨졌다 다시 등받이에 부딪혔다. 그는 저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지르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날카로운 말을 하려 입을 여는 찰나, 집사는 그를 두 팔 안으로 끌어당겼다.

 

뭐해요.”

 

등뼈가 그대로 만져지는 마른 등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두드리며, 그는 베이즈의 깊숙한 마음속에서 제때 올라오지 못해서 말라붙어버린 감정들을 퍼올렸다.

 

가야돼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미 그는 집사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두드리고 쓰다듬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그 애가 위험해요.”

 

베이즈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지만 울대를 긁으면서 올라오는 쇳소리를 숨길 수 없었다.

 

누가 죽어요. 죽을지도 모른, 다고요. , 때문에, 다시, 아니라고 믿, 믿고 싶어도, 나 때문,

 

그는 훌쩍거리는 소리가 섞인 말을 띄엄띄엄 내뱉었다. 한마디를 내는 게 고통스러웠던지 고개를 계속 저으며, 짧고 급하게 숨을 들이쉬는 모습은 집사의 눈에 안쓰럽게 비추어졌다. 어께를 들썩거리면서 앓는 소리를 내는 베이즈를 똑바로 앉히고, 그는 말했다.

 

 

그 소년에게 가십시오.”

 

 

베이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차의 문을 열고 나가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고마워요.” 


베이즈는 집사가 차를 몰고 그의 시야에서 빠져나간 이후에야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히 그의 친부와 계모가 그를 잘 처리했느냐고 물어올 것이다. 그러면 집사는 대답할 것이다. 세상에서 놓아주었다고. 단순히 목숨을 끊어버렸다,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을 잔인한 인간들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집사는 그들 손에 꽉 잡힌 좁은 세상으로부터 그를 놓아주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