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교복을 입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주변에서는 왜 또래들과 함께 모형 총을 가지고 놀지 않는지, 왜 뒷골목의 불량아들에게 죽어라고 덤비는지, 왜 멋있어 보이는 깡패들과 조차도 어울리지 않는지 따위의 질문이 쏟아졌었다. ‘왜’라는 단어는 언제부터인지 나를 커다란 부담으로 짓누르기 시작했다. 대답이 달라질 수 없는 단어였다.
[마군자룡] Trigger
“마군, 근데 말야.”
자룡이 더디게 운을 띄웠다. 차를 몰던 마군이 곁눈질로 자룡을 보았다. 무슨 얘기를 꺼내려고 저렇게 조심스러운 것인지 그는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작은 폭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마군은 도로를 주시했다.
며칠 전 교통사고를 가장한 살해가 있었다. 사건의 증인을 호송하던 차가 의도적으로 충돌한 다른 차량에 부딪혀 전복되고, 그 차 안에는 일가가 탑승 중이었다. 그와 알고 지내던 형사 또한 상처를 입었다. 경찰은 위험한 직업이었고 제 옆에 앉아있는 사내도, 저도 그렇기 때문에 위험했다. 한 순간 눈을 맞추어 이야기를 들어주겠다고 도로 위에서 주의를 나누어 버리면 피할 시도도 하지 못하고 ‘그런’ 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 점을 이해해주길 바라며, 마군은 여전히 고개를 앞으로 항하고 있었다.
“화났어? 내가 자꾸 귀찮게 해서? 근데, 오늘은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어, 군.”
“그것 때문 아냐. 그나저나, 뭣 때문에.”
“총 쏠 때 자세가 많이 불안하길래, 오늘 가서 나랑 같이 고쳐볼래?”
내가 사격은 좀 하거든, 알잖아? 실없는 의성어와 함께 자룡이 장난스러운 어투로 말을 내었다. 마군이 대답을 않자 자룡은 괜스레 무안해져 분위기를 황급히 덮어버리려고 했다.
“에이, 그래. 총 그거 좀 긴장하면 떨릴 수도 있지. 그나저나, 다음 주 월요일이 어버이 날인데…”
마군의 표정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갑자기 차 한 대가 그들이 탄 차 앞으로 끼어들었고, 그는 난폭한 경적소리를 여러 번 울렸다. 위험한 순간은 한참 지났는데도 운전대를 치며 살벌한 표정을 짓는 것이 평소의 마군과 무척이나 달라서 자룡은 겁을 지레 먹고 말았다. 마군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식은땀이 미끄러져 내려가서 그의 속눈썹에 매달렸다. 그가 한 번 눈을 깜빡이자 그것이 무심하게 떨어지며 그를 깨웠다.
어떻게 무거워진 공기를 움직일 수 있을지, 마군은 눈동자만 굴리다가 불쑥 말했다.
“가르쳐줘, 총 제대로 쏘는 법.”
“어? 어, 응.”
*
“봐. 가늠쇠랑 가늠자가 잘 맞춰져 있어?”
자룡이 마군의 등에 바싹 붙어 키득댔다. 마군은 총을 표적에 겨누고 목표물을 향해서 시선을 똑바로 하라는 것 따위의 설명을 귓가에서 늘어놓는 자룡이 퍽이나 사랑스러웠다. 이미 다 이론상으로 알고는 있지만 정작 총을 들면 몸부터 반응하는 것을 자룡이 알기나 할까 싶었지만, 비밀을 목청 깊은 곳에 머금고 있지 않는다면 분명히 천진난만한 모습은 사라지고 동정하듯 조심스러워할 것이 마음에 걸리어 과거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 방아쇠에 손을 올리고…”
총을 쏠 때 가장 힘겨운 순간이 마군에게 다가왔다. 그는 겁이 덜컥 나 방아쇠에 걸었던 손을 조금 물렀다. 반복해도 그 일에는 익숙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여태껏 쏘아왔던 총알들은 마지막 결단을 위해 짧은 시간동안에도 수천, 수백 번을 ‘나의 정의를 위해서’ 라는 명목을 내세우며 망설이다 떠나보냈던 것들이다. 그렇다 보니 마음은 강할 수 있다고 해도 육체만은 총에 먼저 반응했다.
“아룡.”
“에헤이,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 4년 동안 현역으로 뛰었으면서, 총 한 번 안 쏘고 다 주먹으로 때려잡은 것도 아닐 거고. 연습장에선 다른 사람이 총에 맞을 일도 없잖아!”
자룡은 앞으로 뻗은 마군의 팔을 단단하게 붙잡았다 쓸어내리고 총을 잡은 손 위에 제 손을 겹쳤다. 마군은 더 이상 손을 오므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안 당길게, 라고 말하며 자룡은 자유로운 한 손으로 마군을 끌어안으며 그의 어깨에 잠시 고개를 묻었다. 큰 실수였다.
“떨지 말고…”
순식간에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가 울렸다. 마군은 심지가 끊어지는 것 같은 감각에 천천히 제 몸을 무릎부터 바닥으로 내려앉혔다. 그의 살갗이 순식간에 얇게 젖었다. 심장이 꿈틀거리며 그 박동이 그의 목 위까지 기어 올라갔다. 마군에게 있어 총이라는 것은 눈을 가린 채로 손에 닿기만 해도 그 살벌함을 알아차릴 만큼, 익숙하며 최대한 피하고 싶은 물건이었다.
한순간도 사람의 몸을 관통한 그 총알들이 서른 발이었음을 잊은 적이 없었고, 그의 아버지가 버틴 시간이 두 시간이었음을 잊은 적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기억보다는 각인이었다. 인간 모양의 표적에 다른 사람들이 총알을 쏘아댄 자국이 남아있었다. 마군은 그 위에 한 발을 더하고 말았다.
“마군?”
자룡은 수그려 앉아 마군의 볼을 쓸어내려주다가 그를 끌어당겨 안았다. 여러 가지 질문이 쏟아질 터였다. 왜 그러느냐고, 혹시 과거에 관련된 일인 거냐고 물어온다면 어떤 대답을 할지 혼란스러웠다. 마군은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었다 싶었지만, 자룡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미안해, 미안해. 총 같은 거 안 시킬게.”
마군은 자룡을 마주 끌어안았다. 적잖이 당황했는지 그의 품이 서늘했다. 괜찮아. 너 같은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난 다 괜찮을 것 같아. 나지막하게 속삭이고 마군은 그의 등을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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