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아디 삭제엔딩을 나름대로의 망상과 함께 글로 풀어 봤습니다. 사망소재 주의해주세요.
늑골을 덮은 피부에서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간 쪽에 잔인할 만큼 허무한 배신이 아로새겨졌다. 빨갛게, 흥건하게 젖어 들어가는 시야에 진자룡은 더디게 몸을 수그렸다. 단단한 근육도, 굳게 믿어온 정의라는 것도 뾰족한 날 끝을 막아낼 수는 없었다. 지겹도록 봤던 색이 손가락 끝에 무감각하게 묻어나왔다. 그 감정을 부정한 것도, 그것에 대해 좌절한 것도 아니었다. 몇 번 이러한 맥락의 일을 당했었는지 찬찬히 세어 내려가니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이었고, 헛웃음이 입가에 배어나왔다. 고통이 온 몸을 흔들었다. 그는 햇볕에 뜨겁게 달구어진 바닥으로 몸을 무너뜨리며 눈을 끔뻑였다.
어리광 정도라고 생각하고 받아넘겼던 써니의 빈정 중에서는 이런 말도 있었다―세상 모든 사람들은 당신만큼 정의롭고 착하지 않아서 정의 따위의 것을 붙잡고 늘어지다가는 언제 뒤통수를 맞아도 모를 거라는 말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완전히 맞는 말이라고 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옳게 살아 보았자 세상은 어린아이들의 동화에 나오는 주인공에게 하는 만큼 순순히 옳은 자에게 그 업을 돌려주는 것도 아닐뿐더러 오히려 더 가혹하기까지 해서, 자룡에게 이런 일을 안겨주었던 것일 테다.
인간의 뇌는 육체에 관해서건, 정신에 관해서건, 감당할 수 없는 큰 고통을 받으면 보호를 위해 엔도르핀이라는 것을 분비한다고들 이야기했던 것을 자룡은 문득 떠올렸다. 어지러움에 시야가 비틀려 모든 것이 꿈틀거리는 와중에도 그가 우짖으며 처참함에 몸을 떨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엔도르핀의 존재 덕분이었을 것이다. 심장 박동이 울리는 대로 벌어진 살 틈을 밀고나오며 떨어지는 혈액의 색을 보고서도 그는 ‘배신’에 대해서 단 한 마디의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진자룡은 여태껏 인의를 위해 스스로 품어 바꾸려고 했던 모든 사람들을―사실 상 그들은 배반을 부르는 다른 이름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떠올렸다. 그는 그들의, 밑바닥을 보인 인간성을 끌어올리려고 공들였고 언제나 좌절당했다. ‘그의 나름의 정의’는 찬찬히 생각해보니 시간이 지나며 의미의 변질이 일어났었고, 알면서도 그것을 놓지 못한 채로 그는 괴로움 받으며 강박에 가까운 정의의 실천을 위해 몸부림 치고는 했었던 것 같아 씁쓸했다.
식은땀이 그의 온 피부를 훑어 내려갔고, 입안에서는 단내가 확 끼쳤다.
힘없이 머리를 누이면서 땅바닥에 닿았던 귀에 둔탁하고 빠른 소리가 웅웅 울렸다. 그것은 그가 아는 소리 중에서는 발자국 소리와 가장 닮아있었다. 비명에 가까운 웅얼거림과 몸을 흔들어 재끼는 물리적인 힘이 사람의 접근을 느끼게 해주었다. 힘겹게 돌린 시야에는 방정이 잡혔다. 놀란 표정과 다급한 목소리가 보이며 들리기는 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인식할 수는 없었다. 방정이 휴대전화를 꺼내 ―아마도 응급 의료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땅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자룡의 양 뺨을 잡은 그녀는 곧 엎드린 채로 무너진 몸을 다시 엎어 그의 고개가 하늘을 향한 채로 눕도록 했다.
“진자룡, 진자룡. 내 말 들려요? 진자룡! 아니, 대답하지 마요, 상처가 심하니까.”
방정은 급하게 겉옷을 벗어 손에 감고 그의 상처부위를 세게 틀어막았다. 그의 다리가 충격에 들렸다가 툭 떨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방정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이정도로 막지 않으면 안 돼요.”
누군가 곁에 있다는 안심에 정신적 고통이 슬 덜려가자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 더 크게 돌아왔다. 자룡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외롭게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라면 더 나을 뻔 했다. 다른 때라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겠지만 어째서 행복해질 수 있는 첫 번째 계단에 발을 올려놓자마자 밀려서 고꾸라진 것인지, 원망의 날 끝은 향할 곳을 찾을 수 없었고 그는 죽음을 앞에 둔 여느 사람들처럼 오열하기 시작했다. 끔찍한 기분이라는 말 외에는 형용할 단어가 하나 없었다. 찔려서 아래로 찢긴 상처가 불에 타는 듯 뜨거웠다. 온 몸의 열은 그 작은 틈새에 몰려들어 빠져나가기 바빴고 손이 차가워져 갔다. 내장이 우르르 쏟아져 나갈 것만 같이 고통스러운 것에 누운 자룡의 잇새에서 타액이 밀려올라왔다.
그는 상처를 압박하는 후배의 손 위에 제 손을 얹고서 손을 오므렸다. 지혈 한다고 해보았자 이미 흘러 나가버린 혈액은 많고 시간 또한 배제할 수 없었다. 진자룡은 확실시 했다. 그는 곧 죽는다.
“방정, 이렇게…”
방정은 지혈 할 옳은 방법을 가르쳐 주는 줄로만 알고 그에게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처참했다. 그녀는 이런 때일수록 침착함을 찾아야만 했다.
“이렇게 살지, 말았어야 했나봐….”
다급하고 가쁜 숨소리와 숨이 넘어갈 듯 끅끅거리며 흐느끼는 소리가 한 마디의 몇 부분을 잠식했다. 똑같은 말이 거듭 반복되었다. 방정은 자룡이 자신의 손 위에 얹은 손을 맞잡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어쩐지 인정하는 기분이 될 것만 같았다.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아요, 왜 아주 죽겠다는 듯이 말 하고 그래요. 곧 구급차가 올 거에요.”
방정은 손에 힘을 더 실었다.
“엄마, 엄마….”
격정적으로 흔들리는 온 몸을 방정은 어쩌지 못했다.
“엄마한테는… 우리 엄마한테는 나 밖에 없는데… 어떡해.”
“마음 똑바로 잡아요! 곧 산다니까요.”
“난 못 죽어, 방정, 그런데….”
자룡의 눈이 크게 뜨였다. 과도한 출혈에서 오는 충격이었는지 갑작스러운 토혈과 함께 온 몸이 거칠게 들썩거리면서 바닥에 붙어 있었던 그의 등이 말려 상체가 들리다시피 했다. 방정의 손 위에 올려두었던 손이 강하게 움츠러들었다. 입 안에 가득 고이는 혈액 때문에 그는 비명을 질러낼 수조차도 없었다. 그는 헉헉대며 사지로 땅바닥을 쳤다. 인간 보다는 죽어가는 짐승의 울대에서 울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방정은 그가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단말마를 대신 울부짖었다. 자룡의 눈동자가 헤깍 뒤로 넘어간다.
“안 돼, 안 돼…. 진자룡, 살아야죠, 못 죽는다면서요?”
방정은 겁에 질려 힘을 더 실었다. 아마도 그 감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었다. 힘을 가득 주고 세운 손가락과 함께 얇은 겉옷이 상처 안으로 밀어 넣어 졌다. 열이 손가락의 끝을 훅 휘감으며 신경을 타고 비린내를 올려보냈다. 그녀는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단순히 ‘징그러움’이라고 할 감각이 결코 아니었다.
자룡이 안고 있던 배신의 처참함은 그대로 방정에게 전가되었다. 그녀는 방금 전 자룡의 몸을 지배 했던 것은 육체의 고통이 아닌 정신의 고통이었을 것을 깨닫고 제대로 된 무언가 조차 표할 수 없을 만큼 절망했다. 쓸데없는 믿음은 오히려 해로웠고, 그의 목숨이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에 붙잡아주지 않고 떠돌게 했던 손을 떠올린 방정을 무너져 울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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