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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

[조조X청룡] 그때 두 손 안에 담지 못했던 미리내

관우가 사망한 뒤, 청룡은 모종의 이유로 약 천년 전인 조조가 사는 시대로 떨어집니다. 본래 자기가 있던 곳에서의 타겟과 조조를 착각해 죽이려 들다가 갇혔다는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돌아오지 않겠다더니, 결국은 돌아오신 게요? 짙지만 단정한 눈썹, 한 폭 수묵화를 그리는 붓놀림처럼 까맣게 흔들리는 긴 머리칼 하며, 사나우나 온순함을 뒤에 숨겨둔 두 눈동자. 이렇게 하얗게 머리가 세어, 그대를 놓아버린 세상 속에 사는 나의 옷자락에 운장 그대와 똑 닮은 사람이 스쳤소.




[조조청룡] 그때 두손 안에 담지 못했던 미리내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그 날로 보름째 묻고 있었다. 조조는 중후하고 거친 목소리를 입 밖으로 냈다. 그의 말들이 철 덩어리 같은 침묵이 되어 바닥에 덜컥 떨어졌다. 그가 미간을 짚었다. 이 자는 또 어떤 신념이 마음에 박혀있어 입을 열지 않나, 그는 재촉이라도 하듯 철창을 손으로 두드렸다. 무릎을 꿇고 앉아 미동조차 만들지 않는 철창 너머의 사내는 조조에게 많은 것들을 상기시켰다. 그 때의 운장을 보는 것만 같군, 기분이 묘하다, 따위의 말을 중얼거리며 그는 철창 가까이를 거닐었다.

  “그대도 길들여진 짐승인가? 나는 그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있네.”
  온 몸이 아주 예전과 같지는 않은 탓이리라, 조조는 힘겹게 흙바닥으로 내려앉아 철창에 등을 기댔다. 곁눈질로 사내를 살피니 그 또한 고개를 숙인 채로 눈만 굴려 조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로의 눈빛이 섞이자 흠칫하는 것이, 암석 덩어리 같았던 사내의 ‘인간 같은’ 면모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는 신호를 주었다. 옥의 경비를 서던 병사들이 조조가 낸 앓는 소리를 듣고 황급히 일으키려 했지만, 그는 사납게 손을 위로 내젓고 그냥 두라 명령했다.

  “쓸데없는 참견 말고 이 자에게서 빼앗은 괴상한 상자나 들고 오라.”
  물러나지 않는 병사들에게 호통을 치곤, 조조는 사내를 살폈다. 사내는 조조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 처음부터 이런 상책이 있는 것을 깨달아야 했건만, 조조가 탄식하듯 내뱉는 말에 사내의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냉소와 기대를 섞어 미적지근하게 입가를 한 번 올리고 나서 조조는 상자를 건네받았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목관은 나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차갑고 무거웠다. 작은 체구의 사내가 용케도 이런 것을 늘 매고 다녔던 모양이었다.



  “이 목함에 담긴 것이 그대에게 소중한가 보군?”

  “그게 내 전부이자 존재를 설명해주는 거요.”

  “무엇이 들었기에 그렇게 대답하는 겐가, 응?”

  사내가 잠시 멈추었다.

  “그대의 군주는 여기에 없어. 처음 만난 날 이야기 하지 않았나? 그대의 군주는 이곳에서 이름 한 번 들린 적 없는 낯선 자란 말일세. 후환을 두려워 말고 말해보게.”

  “열 네 자루의 검.”

  겨우 검 열 네 자루가 그렇게도 훌륭한 암살자의 ‘전부’라니, 조조는 기가 차 헛웃음을 냈다. 반질반질한 표면을 가볍게 쓸자 무언가 더 말할 듯 사내가 몸을 비틀었다. 말하게, 하자 그제서야 입술을 달싹이며 말하려는 모습이 늑대보다는 잘 훈련받은 사냥개와 닮아있었다.

  “당신께 충성을 바칠 테니 그 검집 안의 검들 중 단 하나만 내어주시오.”

  수상하기 그지없는 부탁에 조조는 큰 소리로 웃었다.

  “내가 무얼 믿고 그대에게 검을 돌려주겠나?”

  “당신이 내 임무의 일부분이라면 해쳐야 하지만, 임무가 실패로 돌아간 시점인 지금은 결코 불필요한 살생은 만들어내지 않을 테니 날 믿어주시오.”

  아무리 마주보아도 그 곧은 눈빛에는 무뎌지기가 어려웠었다. 어떻게 그 점마저도 비슷해 그를 안달 나게 하는지. 조조는 홀린 사람처럼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알려주면 검을 뽑아다 주리다.”

  “청룡이오.”

  “청룡, 그대의 굳건함에 가히 어울리는 이름일세. 그나저나, 이 물건은 어떻게 여는가?”
 

  그가 기대하는 이름일 리가 만무했다. 쓴 날숨을 뱉고, 조조는 목함을 살펴보았다. 어떻게 만지다 보니,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함의 뚜껑이 열리며 잘 세워진 은빛 날들이 맹수의 이처럼 드러났다.
 
  “그대는 도대체 어디에서 왔는가. 이 검들은 본 적도 없는 기술로 만들어진 듯 하군.”

  “더 이상은 말씀드리지 않겠소, 이제 그 중에서 제일 작은 금빛 검을 건네주시오.”

  “이 정도나 작은 검으로는 아무에게도 해를 입힐 수 없겠다만, 뭘 하러 부탁하는가?” 조조는 날에 손이 닿지 않게 조심히 검을 잡았다. 수시로 떨리고는 하는 손 때문에 검을 떨어뜨리지나 않을는지, 손에 힘을 꽉 주고 그는 철창의 빈 틈 사이로 그것을 건넸다.

  “내 본연을 다 할 순간이 와서 그러는 것이오.”

  조조는 사내가 가슴팍을 향해 금빛 날을 세우기 전 까지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당장 멈추라 몇 번을 일렀지만 사내는 검을 거두지 않았다. 다급한 조조의 목소리에 병사들이 일제히 달려 들어왔다. 옆으로 팔을 쭉 뻗어 손바닥을 보인 것이 한 발자국도 다가와서는 안 된다는 신호임을 아는 병사들은 조조의 안위만을 확인한 뒤 벽에 붙어 물러섰다.

  “불필요한 살생은 피한다면서, 그대 생명은 생명이 아닌가?”
 
  “필연적인 죽음이오. 조금 앞당겼다 뿐이지. 임무에 실패한 자에게는 죽음만이 따르오.”

  “멈춰라, 어서. 그 검을 돌려주면 내게 충성을 다한다고 하지 않았나.”

 

  쩔그렁거리며 딱딱한 돌바닥에 검이 부딪혔다.



  *


  “당신께 거짓말 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말해보게.”

  “청룡은 칭호요, 제 본명은 없습니다.”

  “그런가, 그러면 내 그대를.”

  “…”

  “관우라 이름 붙여도 되겠나?”

  “그 이름을 영광스레 받겠습니다.”


  그래, 관우. 관우.

  조조는 그러고 나서 청룡의 옷가지를 벗겨 내려갔다. 그런다 한들 그가 갈망했지만 가지지 못했던 자와 같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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